너굴너굴의 보드게임 리뷰
  •  보드게임 정보

발매년도 : 2018년

게임 타입 : 퍼즐, 팀경쟁, 단어

플레이 타임 : 30분

플레이 인원 : 4-8인

 

시작하며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Taboo 라는 보드게임이 있습니다. 스피드 퀴즈처럼 특정 단어를 팀원들에게 맞추도록 유도하는 게임인데요. 흔하디 흔한 단어 맞추기 게임이지만 재밌게도 자주 쓰이는 단어를 쓰지 못하도록 출제자의 자유를 강제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렇다보니 간단한 단어를 설명할 때도 상당히 우회해야 하죠.

예를 들어 김치를 설명할 때, “빨간색. 고춧가루, 매운 맛, 배추, 무, 한국, 찌개, 양념” 등의 단어를 쓸 수 없다고 해봅시다. 문제 출제자는 김치를 설명하기 위해해서 “이것은 녹색과 흰색이 절반씩 섞은 것인데. 밥이랑 같이도 하고 그릇에 담긴 액체에 함께 담겨있기도 해. 외국인들에게  항상 두유노~ 하고 물어보는 거야” 하는 식으로요.

그것을 팀 게임으로 비튼 게임이 트랩워즈입니다. 재밌을것 같나요? 한글판으로도 나온다는 트랩워즈가 어떠한 게임인지 함께 살펴보죠!

 

규칙

 

 

플레이어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 던전 끝에 있는 보스 몬스터를 잡아내는 것이 목적입니다. 두 팀은 번갈아가며 상대팀에게 키워드를 하나 정해준 뒤 그 키워드를 설명할 때 사용해서는 안 될 단어의 목록을 적어둡니다. 이 금지어의 갯수는 상대팀이 머물고 있는 방의 숫자와 일치합니다. 5번 방에 있다면 5개의 금지어를 받게 되는 식이죠.

양팀 모두 준비가 되면 키워드를 각 팀의 문제출제자에게 건네 줍니다. 지고 있는 팀부터 시작하여, 문제 출제자는 키워드를 확인한 뒤 30초 내에 이 키워드가 무엇인지 설명해야 합니다.

팀원들은 상의를 할 수 없으며 5번의 시도 내에 정답을 맞추어야 합니다. 만약 문제 출제자가 금지어를 말하거나, 정답을 유출시킬 정도의 실수를 하거나, 시간이 다 지나도록 맞추지 못하거나, 5번의 기회를 다 쓰고도 정답을 맞추지 못하면 다음 방으로 전진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양 팀이 번갈아가며 진행 합니다.

일부 방에는 장애물 카드가 설치 되는데 이 방에 도착한 팀은 해당 장애물이 주는 소소한 페널티와 함께 문제 맞추기를 시도합니다. 다행히 이 장애물은 1회성이라 한번만 적용 받으면 됩니다.

이런식으로 진행하다가 마지막 보스방에서는 보스가 주는 페널티를 받은 채 문제 맞추기에 성공하면 게임에서 승리합니다.

 

게임에 이것저것 사소한 규칙이 존재하긴 합니다만 큰 맥락은 위와 같습니다 🙂

 

 

감상

 

 

자, 트랩워즈의 장단점에 대해 이야기 해봅시다.  워낙 간단한 게임인만큼 하나의 큰 장점과 하나의 큰 단점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1. 예측을 뛰어넘는 예측

트랩워즈를 한 단어로 정의하면 예측게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상대방이 말할 것 같은 단어를 적어넣어 적중시키며 전진을 막아내는 공격적 예측. 나를 상대로 적어 넣었을 단어를 예측하고 피하는 방어적 예측. 두 가지가 존재하는데, 이 두 종류의 예측을 오가며 게임 내내 저격하고 저격 당하는 맛이 굉장히 좋은 게임입니다.상대방이 입을 열자마자 트랩을 밟았을 때의 쾌감. 모든 트랩을 피하여 설명했을 때의 쾌감. 양쪽 모두 나름의 매력을 지니고 있어요.

 

우선 공격적인 예측부터 이야기를 해봅시다.

사람은 성장 배경, 성격, 직업, 취미 같은 것에 따라 굉장히 다른 어휘폭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 이라는 단어를 설명할 때도  <너. 나. 우리> 같은 직접적인 표현을 쓰는가 하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유인원> 같은 표현을 사용하거나, 혹은 <생각하는 존재. 신의 자식.> 이라는 철학적 혹은 종교적인 정의로 설명할 수도 있죠.

이렇게 설명할 수 있는 방식과 범위가 무궁무진 하다보니 상대 출제자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는 것이 꽤 중요해요. 출제자가 단순하고 직관적인 어휘를 사용하는 편인지, 아니면 두루뭉술하고 추상적인 표현을 쓰는 편인지, 아니면 과학적인 표현을 쓰는 편인지에 따라 어떠한 부류의 단어를 사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거든요. 트랩을 예측하고 의도적으로 피하려고 노력할 출제자를 위해 1~2가지 변화구를 섞어 넣어주는 것도 상당히 효과가 좋습니다.

긴장한 출제자가 문제를 더듬더듬 설명하다가 트랩을 정확히 밟았을 때. 숨을 죽이고 조용히 있다가 “아하하하핫! 걸렸다-!!” 하며 손가락질 하며 박장대소 하는 재미가 굉장히 좋아요. “아아아- 다른 단어를 쓸걸-” 하고 좌절하며 무너지는 출제자를 보는 것은 정말로 즐거운 경험이죠.  이렇게 자극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내가 능동적으로 만든 트랩”에 상대방이 걸려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예로 매 라운드마다 “이 트랩은 누가 쓴거야?” 라며 덫에 걸린 사람이 트랩의 소유주를 찾곤 하는데, 그에 반응하듯 누군가 적극적으로 손을 들며 “내가 쓴 거야!” 라고 어필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거든요. 마치 사냥에 성공한 사냥꾼처럼 말예요. 전리품을 자랑하는게 즐거운 것과 같은 이치죠 🙂

 

그럼 방어적인 예측에 대해서 이야기 해봅시다.

출제자 입장에서 트랩이 무엇인지 모른채 무언가를 설명해야 하는 것은 꽤 부담스럽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얼마나 읽어냈을까? 이 단어를 썼을까? 그 단어 대신 이 단어를 쓴다면? 혹시 거기까지 읽어냈을까?  차라리 쉬운 단어로 갈까? 머리 속은 복잡하고. 설명은 해야하고.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니 미쳐버릴 것 같죠.  게다가 팀원들은 서로 상의를 하지 못하니 되도 않는 답을 툭툭 뱉어내는데, 조급함에 나도 모르게 내뱉은 단어 하나가 하필 트랩이었다면… 턴을 날렸다는 그 좌절감은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이렇게 말하면 출제자 포지션이 부담만 되고 재미 없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상대방이 무슨 단어를 골랐을지 직감적으로 느끼고 트랩워드를 다 피해내며 정답을 정확히 맞추도록 유도하면 그 성공의 쾌감은 말할 것도 없이 큽니다. 게다가 라운드가 지날 수록 점점 트랩워드의 수가 많아지니 점점 설명이 까다로워 지는데. 그럴수록 성공의 재미도 커지고 믿을 수 없어 하는 방어팀을 보는 것도 너무나 즐거워요.

저는 개인적으로 출제자의 단어를 예측하는 것보다 문제출제자가 되어 함정을 이리저리 다 피해내는 과정을 더 재밌게 느낍니다. “가발” 이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모두가 “이덕화”를 떠올릴 때 혼자 “설운도”를 떠올린 것이 기막힌 묘수가 되거나, “문신” 이라는 단어를 설명할 때 “몸, 그림” 같은 단어를 예측하고 “우리 살덩이에 뾰족한 바늘로 박아넣는 것” 이라고 설명하며 괜찮은 회피를 시도하기도 했죠. 비록 색깔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실패하긴 했지만요.

이렇게 상대방의 성향을 읽으려 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눈치 / 예측 싸움의 맛이 굉장히 좋은 게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공방의 재미가 코드네임즈와 디크립토 이상으로 재밌었어요.

 

 

이 외에도 귀여운 콤포넌트, 풍부한 단어량, 완급 조절이 가능한 모듈형 보드 등 소소한 장점들이 있긴 하지만 게임의 재미를 결정하는 치명적인 요소는 아니니 지나가듯 알아만 두셔도 괜찮을 듯 합니다.

 

자 그럼 트랩워즈가 가진 치명적인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 해봅시다.

 

 

  1. 너무나도 많은 그레이존.

 

영어에는 그레이존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경계를 뜻하는 데요. 트랩워즈의 문제출제와 정답을 맞추는 부분은 그레이존으로 점철 되었다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부분을 “플레이어들의 해석”에 의지하는 인상을 줍니다. 그렇다보니 아차하면 규칙을 어길 수 있는 여지가 굉장히 많은 편이예요.

룰북에는 게이머들이 해도 되는 것과 안되는 것 대해 상당히 다양한 경우와 예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정 단어는 트랩워드로 사용할 수 없다. 발음이 비슷한 것은 안된다. 정답의 예를 들어선 안된다. 현재 경험하고 있는 것(방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것은 안된다 등등… 자잘한 규칙이 상당히 많은데요. 이 모든 것이 정말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기 너무나 쉬운 것들입니다. 심지어 룰북에 있는 예제 조차도 사람에 따라 대단히 미묘한 경우가 있습니다.

A trapword is triggered by all closely related forms of the word. For example, scientist is a trap for “science”, “scientific”, and even abbreviations such as “sci-fi” and “SF”

룰북에서 가져온 예시입니다. 트랩워드는 근접할 정도로 관련된 형태의 단어를 언급했을 때도 발동된다고 쓰여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이언티스트(과학자)는 사이언스(과학), 사이언티픽(과학적인), 혹은 사이파이나 SF(공상과학) 의 트랩으로 쓸 수 있다고 합니다. 아마 “같은 계통이니까” 하고 끄덕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원만 같을 뿐 용도가 완전히 다른 단어들인데? 도대체 어떻게 관련이 있다는거야? 분야? 철자?” 하며 정확한 선을 긋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겠죠.

아쉽게도(?) 저는 후자의 사람입니다. 무언가 안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럼 어디까지 안되는 것인지. 반례는 없는지. 분쟁이 생겼을 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 답을 알고 싶어합니다.

이에 대한 답으로 트랩워즈는  “But don’t be too pedantic. “Conscience” was related to science back when people were speaking Latin, but in English, those words are not close enough to trigger a trap (너무 규칙에 집착하지 마세요. 컨사이언스는 사람들이 라틴어를 쓸 때 과학과 관련이 있던 단어지만 영어 기준에선 트랩을 발동시킬 정도로 근접한 단어가 아닙니다)”

라고 룰북에서 답하고 있습니다. 규칙을 토대로 즐기는 것이 보드게임인데 규칙에 집착하지 말라니… 끙…  그레이존이 너무 많다보니 트랩워즈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답을 정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물론 나름 상황을 해결하고자  ‘3초안에 적발하지 못하면 트랩을 밟지 않은 것으로 쳐라’ / ‘애매하다면 일단 진행한 뒤 판단하라’는 구절도 있긴 합니다만… 좋게 말하면 느슨한 규칙을 통해 플레이어들에게 자유도를 주고 있는거고 나쁘게 말하면 눈가리고 아웅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책임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모두가 납득할만한 정확한 규칙을 제시하지 못한 채 판단의 책임을 플레이어들에게 넘기고 있으니까요. 디크립토나 코드네임즈처럼 좀 더 엄격하게 기준을 세워 플레이어간에 있을 혼선을 줄이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트랩워즈는 재밌고 즐거운 게임입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게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제 내기 / 문제 맞추기 과정만 두고 하는 이야기 입니다. 이 부분은 코드네임즈 / 디크립토와 비벼도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로 긴장감도 쫀쫀하고 눈치 싸움이 재밌어요. 하지만 그 외의 것은 거의 쓸모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사족. 그 이상 그 이하의 느낌도 주지 않습니다.

특히 맵 중간중간에 설치하여 도착 팀에게 추가 페널티를 주는 장애물들은… 미안하지만 그야말로 쓴웃음이 나올 정도로 유치합니다. 메아리 효과(사랑하는- 사랑하는 온곡-온곡- 초등학교- 여러분- 여러분-) 라던가 들숨 한번에 몰아치듯 설명해야 한다던가 하는 소소한 장애물들은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 없어도 무방할 정도로 게임에 별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장애물을 이동시키는 자잘한 규칙이 더 추가되어 번거롭기만 하단 인상이예요. 물론 어른의 시각에서 보아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에겐 다소 재미난 게임 외적인 경험을 주긴 할거예요. 그러나 1~2차례 즐기고 나서도 그 장애물들을 계속 똑같이 즐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듭니다. 차라리 판타지/몬스터/장애물 같은 어리둥절한 테마에 힘을 쓰느니 애매할 수 있는 규칙을 좀 더 탄탄히 하고 종이용지를 더 넣어주는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렇게까지 투덜댈거면 단점으로 넣으면 되지 않나 싶겠지만… 말 그대로 사족일 뿐 게임에 나쁜 인상을 주는 요소는 아닌데다 이런 요소를 좋아하는 소비자 층이 분명히 존재할테고, 싫으면 저처럼 그냥 빼도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그냥 총평 부분에 따로 언급하는 정도로 생각을 남기려 합니다.

이 게임이 한글화가 된다죠? 언어를 사용하는 게임인만큼 규칙에 다소 변경이 생기지 않을까 싶은데, 한글의 특성을 살려 좋은 쪽으로 규칙이 개선되면 더욱 좋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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