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굴너굴의 보드게임 리뷰
  •  보드게임 정보

발매년도 : 2008년

게임 타입 : 경제, 일꾼놓기

플레이 타임 : 30-150분 (150분? 속지마세요. 인원 & 장고 플레이어에 따라 훨씬 더 길어지며 체감 플레이 시간은 더 깁니다.)

플레이 인원 : 1-5인

 

시작하며

 

모처럼 큰 게임을 하나 리뷰 합니다!

 

우베의 삼부작 중 하나인 르아브르예요.

 

아그리콜라와 뤄양은 오래전부터 즐겨왔지만 르아브르는 이상하게 접해볼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이제서야 수확 3부작의 리뷰에 마침표를 찍겠군요.

 

그럼 리뷰 시작합니다.

 

 

 

* 내용이 워낙 길다보니 모바일보단 랩탑/데스크탑으로 보시길 추천합니다.

 

규칙

 

 

* 세세한 부분은 리뷰의 길이 문제로 생략하였습니다. 규칙은 룰북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게임의 목표는 간단합니다. 르하브르라는 항구에서 가장 많은 재물을 쌓아 승리해야 하지요. 게임은 약 20라운드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라운드는 7번의 액션(플레이어별 7번이 아닙니다)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게임이 종료되면 각 플레이어들 한 차례씩 더 진행한 뒤 자신이 가진 건물의 가치와 돈의 총합을 비교하여 승자를 가립니다.

 

 

 

 

세팅은 다소 번거로우나 크게 어렵진 않습니다. 인원 수에 따라 사용되는 기본 빌딩 카드를 골라낸 뒤 무작위로 섞어서 세등분 합니다. 그리고 각 더미를 오름차순으로 정렬한 뒤 보드 위에 깔아놓습니다. 각 더미별로 가장 위에 놓인 건물은 현재 건축 가능한 건물이며 밑에 깔려있는 건물들은 자신을 덮고 있는 건물이 모두 건설되어야 지을 수 있게 됩니다.

 

이제 6장의 특수 건물카드를 무작위로 뽑아 섞은 뒤 보드위에 놓습니다. 이 특수건물은 특정 라운드가 지날 때마다 공개되며 마을에 추가 됩니다. 게임에서 거의 유일하게 운이 작용하는 부분이지요.

 

라운드 카드를 인원 수에 맞추어 준비 & 정리 한 뒤 나머지 잡다한 자원 세팅을 마치고 게임을 시작합니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차례가 되면 공급 액션을 수행합니다. 자신의 배를 최전방으로 배치한 뒤 해당 칸에 그려진 자원을 공급처에서 가져와 보드 위에 보충하죠.

 

이제 플레이어는 두 가지 메인 액션 중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1) 물자 조달 – 보드 위에서 자원을 가져오기

 

2) 건물 액션 – 디스크를 다른 건물 위에 올림으로써 해당 건물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마을 건물일 경우 건물의 비용을 은행에, 다른 플레이어의 건물일 경우 해당 플레이어에게, 자신의 건물일 경우 무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건물을 짓기 위해선 건축 액션카드를 이용하여야 합니다. 마을에 공개된 3가지 건물 중 하나를 골라 필요한 자원을 지불하고 가져올 수 있지요. 비슷한 원리로 식량을 꾸준히 공급하는 배는 조선소 건물에서만 제작할 수 있지요.

 

다만 건물과 배는 반드시 자원을 지불하여 만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보조 액션인 현찰 박치기(…)로 건물 / 배를 사올 수 있지요. 재력만 충분하다면 몇번이고 반복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지은 건물은 아무때나(심지어 다른 사람의 차례일지라도) 보조액션을 통해 팔아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번갈아가며 턴을 진행하다 7번째 액션이 (즉, 배 한척이 7번째 칸에 도달한 채)이 끝나면 해당 라운드는 종료되며 몇가지 절차에 따라 라운드를 마무리 짓습니다.

 

1) 라운드 카드에 수확이라 써져있으면 곡식과 소의 유무에 따라 추가 곡식과 소를 지급 받습니다.

2) 밭솥 안에 있는 숫자만큼 음식을 지불해야 합니다. 모자란 식량은 돈으로 메꿀 수도 있습니다.

3) 라운드 카드에 카드 그림이 있으면 마을에 건물이 하나 들어섭니다. 닻 모양이 있다면 특수 카드를. 없다면 보드 위에 놓인 3장의 대기 건물 중 가장 낮은 고유번호를 가진 건물을 가져와 마을 공간에 놓습니다.

4) 라운드 카드를 뒤집어 배를 공개합니다. 이 배는 앞으로 조선소에서 지을 수 있게 됩니다.

5) 다음 라운드의 선 플레이어부터 게임을 새로이 시작합니다.

 

게임 도중 식량을 지급하지 못할 경우 대출을 통해 4원을 받고 모자란 식량을 돈으로 충당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소지한 대출카드는 공급단계시 이자(Interest) 칸에 배가 착지할 때마다 갯수에 상관없이 1원을 은행에 지급해야 합니다(모자라면? 또 대출 받아야죠). 이러한 대출카드는 5원을 내고 은행에 반납할 수 있으며, 게임 종료시까지 상환하지 못하면 1장 당 7점씩 잃게 됩니다.

 

 

위 과정을 반복하다 라운드가 모두 끝나면 건물의 가치와 돈을 모두 합쳐 가장 높은 사람이 승리합니다.

 

 

 

 

감상

 

 

정말 긴 감상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으니 서론은 이쯤에서 줄이고 바로 장단점으로 넘어가지요.

 

 

1. 배우긴 쉬우나 마스터하긴 어려운 게임

 

 

우베 로젠버그의 게임 혹은 그와 버금가는 무게의 유로게임 중 르아브르만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게임이 또 있을까요? 규칙만 두고 봤을 때 르아브르는 놀라울 정도로 간단한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들은 게임 내내 단 두가지 행동만을 반복 합니다. 배를 움직이고 1) 자원을 가져가거나 2) 디스크를 빈 건물에 올려놓고 능력을 사용하지요. 너무나도 간단하게 배울 수 있는 이 두 액션은 르아브르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며 시작이자 끝입니다.  두 액션만으로 모든 것을 꿰뚫고 있으면서도 배우기 쉬운 높은 접근성을 가지고 있지요.

 

그러나 배우기 쉽다곤 해도 게임을 마스터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 입니다. 매 라운드마다 찾아오는 음식의 압박 속에서 음식과 자원을 확보하랴, 자원을 더 효율 좋은 가공품으로 바꾸랴, 건물을 지으랴, 건물을 사용하랴… 정말 바쁩니다. 아그리콜라나 다른 일꾼놓기류에 비해 단 하나의 디스크(일꾼)만 주어지기 때문에 언제 무엇을 하는가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할 것은 많은데 손이 부족한 느낌을 제대로 느끼게 돼요.

 

 

 

곧 이어 장점 #2에서 설명하겠지만, 르아브르는 선택의 폭이 유독 넓은 게임입니다. 처음 게임을 접하는 플레이어들은 무엇을 해야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어버버- 하다가 순식간에 게임이 끝나며 영혼의 가출을 느끼게 됩니다. 뭔가 하긴 했는데 제대로 한건지 이해하지 못해요. 이것 저것 찔러보다 끝났다는 느낌을 받죠.

 

‘이제 대충 알겠다’며 다시 해본들 결과는 마찬가지. 방금 전 보다 아주 조금 더 나아졌을 뿐 여전히 어버버- 하다가 게임이 끝나버리고 맙니다. 자원을 가져가는 타이밍, 교환하는 타이밍, 건축 타이밍 등을 잘 모르니까요. 서너차례 즐기고 나서야 큰 그림을 그리는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액션이 간단하고 명료하면서도 게임의 깊이가 뛰어난 게임 디자인을 좋아합니다. 복잡한 액션의 순서와 절차를 확인하는데 소비되는 에너지를 ‘어떤 선택지가 존재하며 그 중 무엇이 최선인가’에 온건히 쏟아낼 수 있기 때문이죠.

 

또한 최선의 선택지를 찾아내는게 어렵다보니 게임을 하면서도 이것이 올바른 수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게임이 끝나도 ‘게임이 어렵진 않은데? 선택만 잘하면 되겠다’ 라는 묘한 도전의식과 건방진(?) 자신감도 생기거든요. 자꾸만 한번만 더를 외치게 되죠.

 

 

 

 

2. 점점 늘어나는 선택지

 

 

보드게임 속 선택지는 대체로 세가지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일정하거나 줄거들거나 늘어나죠. 아, 물론 라운드마다 액션의 수가 무작위로 날뛰는 게임도 있습니다만 그런 게임은 생각보다 드문 편이니 예외로 치죠.

 

선택지의 수가 비교적 일정한 게임으론 글래스로드, 패치워크, 바퀴벌레 포커 등이 있습니다. 매 차례마다 비슷한 양의 선택지가 주어지고 그 중에서 하나를 고르면 되는 방식이지요.

 

선택지가 점점 줄어드는 게임으론 오부족, 버건디, 세븐원더스가 있겠네요. 좋은 수는 대체로 초반에 우루루 빠져나가기 때문에 후반으로 갈수록 조금이라도 더 나은 수를 찾기 위해 고민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반대로 선택지의 폭이 넓어지는 게임은 아그리콜라, 카베르나, 케일러스 등이 존재합니다. 라운드가 진행 될수록 새로운 액션칸이 보드에 추가되며 액션의 종류를 풍부하게 만들어 주죠.

 

르아브르는 시간이 흐를수록 선택지의 폭이 넓어지는 게임에 속합니다. 그런데 그 선택의 폭이 다른 게임보다 유독 넓게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예요. 여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a. 독점이란 개념이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건물이나 능력을 보유하는 게임은 해당 능력을 주인이 독점하게끔 하여 플레이어간의 차별화를 꾀합니다. 아그리콜라의 주요설비 / 보조설비 / 직업, 버건디의 지식 타일, 푸에르토 리코의 특수건물, 카베르나의 특수건물 등이 그런 부류에 속하죠. 이런 요소들은 누군가 능력을 선점하면 그것으로 끝! 다른 사람들은 사용할 기회조차 없습니다.

 

그런데 재밌게도 르아브르엔 밥을 꾸준히 제공해주는 선박과 자물쇠가 그려진 보너스 점수용 빌딩을 제외하곤 독점이란 개념이 없습니다. 누군가 건물을 구입하더라도 그 능력이 해당 플레이어에게 영구히 귀속되지 않죠. 이용료를 지불하는 대상이 그 플레이어로 정해질 뿐 누구에게나 이용할 권리가 주어집니다.

 

이렇기 때문에 누군가 건물을 선점하더라도 내가 가고자 하던 전략이 영구히 막혔다던가, 상대방의 한 수로 인해 선택의 폭이 극도로 좁아진다는 인상은 거의 받지 않습니다. 해당 능력을 쓰기 위해서 경쟁자에게 약간의 이득을 안겨줘야한다는 불만은 다소 생기지만요.

 

이것은 다른 전략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특징입니다.

 

 

 

b. 계속 늘어나는 액션. 액션.

 

 

다른 게임과 비교했을 때 르아브르는 시간대비 선택지의 증가량이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게임의 목표는 승점을 가장 많이 모으는 것. 여기엔 건물의 점수도 크게 한몫 하기 때문에 다들 공격적으로 건물을 짓습니다. 남들에게 이용료를 지불하느니 내가 차지해서 비용일 빨아먹겠다는 마음가짐도 이유겠죠.

 

플레이어들이 딴짓을 하느라 건물을 구매에 소홀 할 경우를 상정한 백업 시스템도 짜여져 있습니다. 라운드가 끝날때면 3개의 후보 건축물 중 가장 낮은 번호의 건물이 마을에 자동으로 들어서며 새로운 선택지가 되거나 특별 건물이 공개됩니다. 선박이 들어서는 것은 말할 것도 없죠. 플레이어들이 무엇을 하던간에 선택지는 여기저기에서 계속 늘어납니다. 빠르냐 느리냐의 차이일 뿐이예요.

 

게임이 종반에 이를 때 플레이어들의 눈 앞에 펼쳐지는 액션의 수는 그야말로 어마어마 합니다. 인원마다 제거하는 건물 카드의 수가 다르긴 하지만 약 20라운드 동안 공개되는 & 설치되는 일반 건물과 특수 건물의 합은 얼추 30개가 넘어갑니다.

 

르아브르에 익숙하지 못한 첫 2~3판은 “그런 액션 카드가 존재했어?” 라며 존재조차 기억하지 못하거나 “아 맞다. 아까 봤었는데.” 하며 기억해두고도 까먹는 상황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쯤되면 꾸준히 늘어나는 액션의 수가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죠.

 

 

저는 르아브르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선택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고민거리가 줄어들거라 생각했습니다. A를 못해도 B를 하면 되니까요. 그러나 실상은 반대였어요. 오히려 최선의 수를 찾기 위해 더욱 고민을 해야했고, 차선책 중에서도 그나마 나은 차선책을 찾기 위해 또 다시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익숙해지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많은 갈림길 때문에 매 라운드마다 무엇을 해야할지 알 수 없는 막막함을 겪었습니다. 다소 괴로울 정도였죠. 쉴새없이 원하는 액션을 하나 찾으려고 여기저기 계속 둘러보고 더 나은 선택지는 없나 고민해야 했거든요.

 

그러나 게임 속 모든 경험이 고통의 연속인건 아니었습니다. 원하는 액션을 잠시 선점 당했더라도 서너개의 차선책이 존재한다는걸 알고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은 꽤나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원하는걸 제때 못했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었거든요. 그러고보면 아그리콜라 속 액션 선점 싸움이 얼마나 치열하고(특히 가족 늘리기!) 타격을 심하게 입는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네요.

 

르아브르를 떠올릴 때면 압도적인 수의 건물 밖에 생각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수 많은 액션을 대놓고 퍼주니 우베의 작품들 사이에서도 르아브르가 독자적인 캐릭터와 위치를 구축하게 되더군요.

 

 

 

3. 재미난 카드 세팅법과 랜덤성

 

 

카드 세팅법이 꽤나 재밌습니다. 건물 카드를 잘 섞은 뒤 세더미로 나누어 각각 오름차순으로 건물을 나열하는데요. 이렇다보니 번호가 비교적 고루 분포된 덕에 내가 원하는 카드가 이른 타이밍에 나오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아예 한쪽 열 깊숙한 곳에 위치하여 등장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르아브르처럼 우베의 게임은 액션의 등장 타이밍이 무작위로 세팅 되는 경우가 꽤 잦습니다. 아그리콜라와 카베르나를 보면 라운드 별로 액션이 분류 되어있지만 그 순서는 무작위죠. 예를 들면 아그리콜라의 울타리 액션의 경우 반드시 1~4 라운드에서 등장합니다. 가족 늘리기의 경우 5~8 라운드 사이에 나오죠. 카베르나도 비슷한 방식을 따릅니다. 이처럼 무작위성의 존재하긴 하나 그 변화의 폭이 비교적 좁다보니 어느 정도 예측을 하며 게임을 운영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르아브르의 기본 건물 카드의 등장 타이밍의 변화 폭은 상당히 넓은데다 예측이란게 아예 의미가 없을 정도로 모든 카드의 등장 순서가 이미 공개되어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운영법이 달라지는데 여기에 예측불가한 6장의 특수카드까지 함께 사용되니 분명 비슷한 게임을 하는 것 같은데도 운영에 있어 상당한 차이가 발생하지요.

 

아무리 좋은 게임이라한들 매 게임이 비슷하게 흘러간다면 금방 식상해집니다. 그런 점에 있어 르아브르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재미난 방식의 카드 세팅법과 특수카드의 무작위성이 게임의 리플레이성을 한껏 살려주거든요.

 

 

 

4. 단순화 된 점수 계산법

 

 

 

르아브르는 딱 한가지. 재물의 합(돈 토큰 + 건물 가치)만을 평가합니다. 채점 기준이 단 하나 뿐이기에 가르치기도 간단하고 목적도 명료하지요. 아그리콜라가 플레이어로 하여금 모든 것(가족, 동물, 집, 울타리, 곡물, 밭 등)을 잘하도록 강요하는 것에 비하면 감사할 정도로 설명하기 쉽습니다.

 

풍부한 자원 종류에 비해 채점 종목이 하나뿐이다보니 이것 저것 다 잘하려고 하기보단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긴 채 내게 필요한 액션을 찾아 자원 칸 / 건물 기능을 통해 자원을 모으고, 더 효율 좋은 자원으로 바꾸고, 그 돈으로 건물과 선박 구입을 반복하면 됩니다. 이것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점수가 차곡차곡 쌓이거든요.

 

물론 말이야 쉽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경쟁자들이 손가락만 빨며 구경하고 있을리가 없는데다, 매 라운드마다 2~5개의 가족이 출동하는 아그리콜라와 달리 매 턴 나에게 주어지는 액션은 단 하나 뿐이기 때문에 이 제한된 액션을 잘 활용해야 하니까요.

 

 

 

 

다만 점수 계산의 단순화가 양날의 검으로 다가올 순 있겠습니다. 아그리콜라나 카베르나 같은 ‘모두 채점할거야!’ 류의 게임은 채점을 하면서 어느 영역이 다소 부족했는지 눈에 들어옵니다. 동물에 소홀했거나, 확장에 소홀했거나, 능력 투자에 소홀했던 점들이 점수용지에 그대로 드러나죠. 내 전략의 장점과 단점을 비교하며 ‘다음 게임에서는 이 부분에 더 신경을 기울여야겠다’는 자기반성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르아브르 같은 경우 무엇이 잘못된 건지 다소 알기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잘한 부분과 못한 부분이 모두 합쳐서 하나의 점수가 되다보니 상대방에게 졌을 때 어느 부분이 취약했는지 시각적으로 구분하기 어렵거든요.

 

뭐 그렇다곤 해도 돈 합산 하나만으로 승부를 보는 깔끔함은 꽤 오랜만에 접하는 스타일이라 단순하면서도 간결하게 느껴져 참 좋았습니다. 아그리콜라에서 망했을 때처럼 여기저기 감점의 소나기가 내리는 참사를 보지 않아도 좋으니까요.

 

 

 

 

5. 벗어날 수 있는 채무자의 낙인

 

의외로 좋았던 점 중 하나는 채무자의 낙인을 쉽게 지울 수 있단 점이었습니다. 아그리콜라에선 한번 구걸을 하면 모자란 음식 당 -3점이라는 충격과 공포의 감점카드를 받습니다. 이 구걸 카드는 특정 카드의 능력이 아니고선 절대로 지울 수 없는 낙인과도 같습니다. 비등한 실력의 사람들끼리 게임을 할 경우 1번의 구걸은 패배로 직결되기도 하지요.

 

우베도 이 빡빡함을 감안한건지 르아브르에선 채무자에게 좀 더 선심을 쓰는 듯 합니다. 음식이 모자랄 때마다 대출을 받게 되는데, 대출을 통해 받는 4원의 비용이 은근히 풍족하게 느껴지는데다 몇 장의 대출카드를 가지고 있더라도 항상 1원의 이자만 내면 되거든요. 채무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자비로움은 상당히 감사할 따름입니다.

 

물론 대출을 갚을 땐 5원이라는 점과 게임 종료시 7점을 깎아버리는 자비없는 면도 존재합니다만 채무자 주제에 불평이라뇨!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지요. 그래도 아그리콜라와는 달리 게임 도중 아무때나 빌린 돈에 1원만 더 얹어서 채무자의 낙인을 지울 수 있으니 그것만 해도 감지덕지 입니다.

 

아그리콜라에서 사소한 실수로 구걸 카드를 받았을 때의 좌절감에 비하면 설령 의도치 않게 채무를 지더라도 금세 채무자 신세를 면할 수 있는 르아브르가 훨씬 더 마음 편하게 다가와서 좋았습니다. 듣자하니 아예 대출금을 끌어안고 초반을 이끌어가는 전략도 존재한다더군요.

 

 

 

 

 

 

그럼 단점에 대해 이야기 해봅시다.

 

 

 

 

 

 

1. 인원에 따른 치명적인 문제 두 가지.

 

르아브르의 모든 장점을 씹어먹을 수 있는 최악의 단점이 두가지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문제 모두 인원 문제로 인해 발생하며 4인 이상부터 눈에 띄게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a. 플레이 타임

 

 

3인플까진 어찌저찌 할만 하지만 4인이 넘어가는 순간 게임은 차원의 틈과 정신과 시간의 방에 빠지게 됩니다. 시간의 흐름마저 멈춰버리는 블랙홀이 우리 주변에 있다면 그것은 르아브르 4-5인플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선택지가 워낙 많다보니 플레이어가 결정을 내리는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거든요. 심지어 장고하는 게이머가 둘 이상 끼어있다면 대기시간은 더욱 급격히 증가합니다.

 

컵에 남은 절반의 물 이야기를 아시나요? ‘물이 반밖에 남지 않았다’ / ‘물이 반이나 남았다’ 라며 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다루는 이야기 입니다. 르아브르를 하다보면 물컵 이야기가 생각나더군요. 우베의 다른 게임이 ‘뭐 별거 안했는데 벌써 절반이야?’ 하고 놀란다면 르아브르는 ‘아직도 절반 밖에 못했어?’ 하며 놀라게 되거든요.

 

당연할 수 밖에요. 무려 20 라운드에 이르는 장기전이니까요. 한참 한 것 같은데도 아직 6~8개의 라운드가 남은 것을 보면 정신이 아찔해집니다. 그렇다고 게임의 흐름 중 일부를 쳐내자니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라 그럴 수도 없고… 짧은 게임을 하자니 특수카드가 주는 변화의 재미가 통째로 날아가버려서 재미가 떨어지고… 룰북에서는 상대방이 메인 액션을 했다면 곧바로 진행하라며 시간단축 요령을 알려주긴 합니다만 그마저도 시간을 크게 아끼는 인상은 아니었습니다.

 

리뷰나 후기를 보면 4-5인의 공포를 경험한 플레이어들 대부분이 ‘영겁의 시간과도 같았다’ 라며 공포에 떠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이 의견에 동의합니다. 르아브르는 2-3인용 게임입니다. 르아브르를 정말 좋아하는게 아니라면 4-5인은 피하세요. 단 앱이라면 5인플도 썩 괜찮습니다. 카드가 눈에 잘 안들어와서 그렇지…

 

 

 

b. 액션의 수

 

 

르아브르는 7개의 액션이 수행 될 때마다 새로운 라운드가 찾아옵니다. 모든 플레이어가 동등한 횟수만큼 혹은 주어진 일꾼을 다 사용해야 라운드가 끝나는 다른 일꾼놓기 게임에 비하면 꽤나 독특한 특징이죠. 그런데 인원이 많아질 경우 이러한 1라운드 = 7액션 시스템에 다소 불만이 생깁니다.

 

놀이가 다 그렇지만 보드게임 또한 내가 능동적이어야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좋은 판단이었든 나쁜 판단이었든 내가 무엇인가 함으로써 나오는 결과물을 보는게 보드게임의 큰 재미요소 중 하나죠.

 

르아브르는 인원 수가 적을수록 나에게 주어지는 라운드 별 액션의 수가 많아집니다. 2인플의 경우 라운드별로 평균 3.5개의 액션을. 3인플의 경우 2.3개의 액션을. 4인의 경우 라운드별로 1.75. 5인플은 1.4개의 액션이 주어집니다. 4인플부터는 대부분 1라운드 1액션을 한다고 보시면 되겠네요.

 

라운드마다 평균 3개의 액션을 수행하며 내게 필요한 자원을 수급하고 / 교환하고 / 건물을 지으며 라운드의 끝을 맞이하는 것과 평균 1개의 액션을 하고 새로운 라운드를 맞이하는 것. 어느 쪽이 능동적이고 재밌게 느껴질까요? 보통은 전자겠죠.

 

물론 라운드를 맞이하는 속도에 비해 액션의 수가 풍족하지 않다보니 빡빡한 맛은 늘어납니다. 한바퀴만 돌았는데 여기저기에서 건물이 우루루 지어지는 광경은 장관이예요. 하지만 저는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은 욕심 때문에 능동적으로 이것저것 다 건드려보는 2-3인이 취향에 맞더군요. 4-5인은 뭔가 제대로 한 것 같지도 않은데 라운드 종료시의 밥먹이기 단계에 두들겨 맞는 느낌이었어요. 설령 초반부는 밥을 적게 먹도록 디자이너가 배려 해줬는데도요.

 

4-5명이 할 게임을 찾고 있다면 르아브르는 피하세요. 절대 추천하지 않습니다!

 

 

 

 

 

 

 

르아브르는 요즘 너무나도 재밌게 즐기고 있는 게임 중 하나입니다. 특이 앱으로 자주 즐기고 있어요. 매 차례마다 주어지는 액션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 최고의 선택지는 무엇인가. 그렇지 않다면 차선책은 무엇인가. 늘어만 가는 선택지 속에서 정답의 실마리를 찾는 과정이 즐겁거든요.

 

아그리콜라보다 덜 빡빡하단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저는 두 게임의 거의 비슷한 압박감을 준다고 느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아그리콜라는 1~2번째 고비만 잘 넘기면 안정기가 찾아오며 점수확보에 집중할 수 있지만, 르아브르는 시작부터 끝까지 비슷한 압박감을 준다는 점이겠네요. 그래도 르아브르는 아그리콜라와 달리 대출을 통해 위기를 적당히 무마하고 선박 구입을 서둘러서 위기를 넘길 수 있단 점에서 꽤 좋은 인상을 받았어요.

 

꽁냥꽁냥 자원을 모으고, 여기저기 널부러진 건물을 통해 교환하고, 그렇게 바꾼 자원을 팔아치우며 건물을 야금야금 늘려가는 과정이 꽤나 재밌는 게임입니다. 최근 아내와 아그리콜라와 뤄양의 사람들을 재밌게 즐기고 있는데 거기에 르아브르도 추가 될 것 같아요. 이로써 우리 부부는 한동안 우베의 삼부작에 푹 빠져서 지낼 것 같습니다.

 

정말 좋은 게임입니다.

 

 

 

 

 

 

 

 

* 이스터에그가 하나 있습니다. 뤄양에서 흘러나온 편지가 망망대해를 떠다니다 르아브르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 재미삼아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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